블로그의 제목과는 다르게 역학을 모르시는 분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역학을 모르시는 분들은 그러한 검색어를 입력하진 않았겠지만...
역학이라는 부분이 일반적으로 나의 자아나 운세가 궁금하게 되어서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역학의 글자들이 이미지와 운동성으로 보이게 되면
우리가 관찰하는 모든 현상들이 소우주로써 역학의 글자들로 설명 가능해집니다.
오늘의 주제도 어렵습니다. 필자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에서 영감을 얻어서 위의 사진을 만들었습니다.
동양철학에서는 토라고 부르고 유교상에서는 중용이라고 하여 중요시 여기고 불교에서는 중도라고 합니다.
필자의 예전 글 토의 철학적 고찰에서 토는 오행의 극단을 중력에너지로써 극단을 막고
다른 오행으로 전환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서 다시 순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고
물질 세상이 유지되는 것이지요.
역학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토가 없는데 토가 생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허자라고 부르시는 분들이 많이 있더군요.
역학에서 허자가 생성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오늘은 토가 없을 때 생성되는 경우를 몇 개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는 충입니다. 서로 반대되는 에너지의 충돌은 충 속에서 회전력을 만들어 냅니다.
예를 들어 신자진 삼합이 이루어질 때도 반대편의 화 오행이 생기고 회전력이 생기고 목오행이 생깁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갑경충하면 을목과 신금이 생김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극 또는 형입니다. 극이나 형이나 제어한다는 것은 오행의 극단을 막는 행위입니다.
수행이라는 것을 정의할 때 네모난 돌을 둥그런 돌로 만드는 행위라는 표현을 많이 쓰시더군요.
위의 그림에서 몸속 단전 위치에서 호흡의 압력이 강하거나 힘이 유지되도록 하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우리가 역학을 통해서 우주의 법칙을 이해하였다면
우리 몸이라는 소우주 또한 미세한 관찰을 하고 그것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수행단체들은 호흡을 중요시 여긴다.
항상 몸과 호흡을 느껴보도록 하자.
어떤 색을 관찰할 때 호흡에 의식의 집중력을 반 정도 남겨놓아
반반 정도의 의식이 분산되어 있다면
우리가 오행이 너무 강하거나 색에 빠져 있을 때
온전히 거기에만 몰두되지는 않을 것이다.
항상 눈앞에 색과 감정에만 몰두되어서 자기 자신을 관찰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항상 개미처럼 힘들고 일만 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삶의 감옥에서 풀려나려면 색과 감정을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될 것이다.
그러면 개미가 아니라 개미(2차원) 위에서 관찰하는 사람(3차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호흡을 하면서 몸에 구석구석을 바라보도록 하자.
그리고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호흡을 관찰하도록 하자.
그러면 필자가 위에 쓴 그림의 질문을 풀기 위한 관찰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역학을 공부한 분들은 유교에서의 중용이라는 부분을 토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훨씬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유교에서는 주역은 공부해야지 할 수 있는 단계이다.
물론 주역도 역학이다.
노래를 부르면서 얼굴 부분의 공기(상압)와 몸통의 공기(하압)를 느껴보도록 하자.
천천히 걸으면서 자세가 앞쪽으로 당기는지 뒤쪽으로 당기는지 본인은 어느 쪽 토의 작용이 우세한 지 느껴보자.
우리 운에서 작용하는 힘들을 에고를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서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창조자가 되도록 하자.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고기자리 특징(with인월) (0) | 2023.01.01 |
---|---|
목극토 (0) | 2023.01.01 |
임수 vs 계수 (0) | 2022.12.18 |
인목 (with 꿈) (0) | 2022.11.26 |
묘술합 (0) | 2022.11.24 |
댓글